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북 현대 모터스/2000년 (문단 편집) === 시즌 총평 === 이름을 바꿔단 첫 해 전북은 창단 첫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프로와 아마 팀이 총 출동하여 국내 축구를 총 결산하는 FA컵에서 97년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첫 우승이라는 감격을 안았다. 또 이에 앞서 창단 후 첫 정규리그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것 또한 전북이 새롭게 탈바꿈하며 진정한 1인자로서 자리에 올랐음을 입증하는 계기도 마련됐다. 이와 함께 선수들도 한국 최고자리에 우뚝 섰다. 완산벌 폭격기' 김도훈과 '무서운 신인' 양정현이 그 주인공. 지난 98~99시즌을 일본 J-리그 빗셀 고베에서 뛰었던 김도훈이 전북으로 복귀하면서 12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최고의 킬러임을 입증했다. 특히 김도훈은 국내 복귀와 함께 황선홍, 안정환을 뛰어넘는 최고의 활약을 펼쳐 보이며 황선홍이 세운 8경기 연속골 타이기록을 세웠고 국내 최고의 골게터임을 다시 한번 팬들 가슴속에 새겼다. 또 올 시즌 전북 유니폼을 새롭게 입은 양현정은 라이벌 이영표와 이관우, 김남일, 최태욱 등을 누르고 신인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한국 축구의 새로운 별로 떠올랐다. 단국대를 졸업한 그는 32게임에 출전 6골 7도움을 기록하며 중원의 사령관으로 전북의 한 자리를 꿰찬 당찬 신인이었다. 이밖에 전북은 그동안 썰렁했던 관중석이 올 시즌 한경기 최다관중(2만 2,850명 8월 2일 안양 LG 3-2승)이라는 신기원을 기록하며 인기 구단으로서 자리로 잡았다. 이처럼 전북 현대가 창단 후 첫 우승과 함께 '1'을 가슴에 새길 수 있었던 것은 아낌없는 지원과 선수단의 투지에서 비롯됐다. 그동안 가난한 구단의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모기업의 투자가 바탕을 이뤘다. 가장 먼저 스타급 플레이어가 없던 구단에 김도훈이라는 최고의 스트라이커 영입과 함께 팀은 천군만마의 힘을 얻게 되었고 골키퍼 서동명이 팀에 합류하면서 더욱 안정을 찾았다. 여기에 선수단 전원에게 시즌 내내 두둑한 보너스를 지급했고 완주군 봉동읍에 전용 연습구장과 고산면에 실내 연습 경기장 건설이 마무리되며 선수단이 안정을 찾아 정규리그 3위라는 위업을 달성 포스트 시즌 진출이라는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프로구단 최초로 최영훈, 유원섭, 고관영, 김은익 등 고졸 신인선수 전원을 독일 바이에르 레버쿠젠에 유학 프로그램을 실시한 것은 새천년들어 명문 구단으로 도약하기 위한 동기프로젝트의 첫 삽이었다. 비록 포스트 시즌에서 석연찮은 판정으로 챔프의 꿈은 좌절 됐지만 다음 시즌 우승 후보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2000년 시즌 전북 현대 모터스 선수단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팬들의 힘 또한 커다란 몫을 차지했다. 원정경기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 주었던 서포터스 MGB(Mad Green Boys)와 경기장을 찾아준 팬들이 없었다면 이런 성과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선수단과 팬 모두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이룬 것처럼 내년 시즌에도 전북 현대 모터스 축구단은 K-리그 최초의 구단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http://www.hyundai-motorsfc.com/club/history_overview.asp?tmenu=1990|#]] [[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역대 시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